요리만화 ‘맛의 달인’에는 녹색 콩을 담기 위해 붉은색 접시를 굽는 도예가 이야기가 나온다. 바삐 사는 현대인에겐 그릇타령이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숨 한번 크게 쉬고 자신의 삶을 채울 그릇을 찾아보자. 우리의 그릇은 어디있는가.
#그릇
신경균씨는 ‘장안요’(長安窯)라는 자신의 전시장을 운영한다. 그러나 만든 그릇의 대부분은 이곳이 아닌 살림집 부엌 입구에 놓아둔다. 전시하는 게 아니라 ‘놓아두는’ 것이다.
“음식 담으려고 만든 그릇을 전시장에 두니 어울리지 않더군요. 주방 근처에 두면 그릇의 원래 느낌이 살아나고, 사는 사람이 고르기도 쉽죠. 몇번 오신 분은 새 그릇을 사지 않습니다. 부엌에서 저희가 쓰는 것중에서 골라 가요. 쓸수록 빛깔이 좋아지는 그릇이 진짜 좋은 거죠.” 그가 만든 그릇은 철저하게 ‘용의 미’를 시험받는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흰색 그릇도 음식을 밀어내는 느낌을 줄 수 있어 마땅치 않다고 한다. 주황색과 노란색의 멍게김치는 흰 그릇보다 검은 그릇에 담아야 고급스럽다는 것. 전통 역시 변하는 시대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여러 빛깔과 무늬를 내기 위해 새로운 제작법을 시도한다. 그의 그릇은 만졌을 때 차지 않고 손에서 미끌거리지도 않는다. 바로 ‘용의 미’다.
그가 한국 음식에 맞는 그릇을 빚기 위해 흙과 나무 등은 국내산만 쓴다. 도끼로 나무를 패고, 발로 물레를 돌리고, 손으로 그릇을 빚고, 장작으로 가마에 불을 땐다. 중요한 또 하나. 그릇은 음식을 잘 알아야 제대로 만들어진다 하여 그는 음식도 아주 잘한다.
#음식
서리맞은 풋고추로 만든 장아찌, 보성 대나무밭에서 2년 묵힌 갓김치, 무이사(전남 순창에 있는 절)식 죽순잡채, 속을 판 참나무 속에서 익힌 방목 청둥오리 요리….
획일화된 맛이 싫어 직접 요리하며 만든 신경균의 레시피는 가짓수와 양이 늘었다. 요즘은 메주 100되, 김장 500포기를 담고 있다. 석빙고 하나, 업소용 대형 냉장고 두 개에 장독은 20개. 멍게김치, 해물김치 등 김치는 15가지나 된다. 갈치순태젓, 멸치젓, 조개젓 등 젓갈도 10여 가지. 장안요를 찾는 사람은 매번 다른 음식을 맛본다. 아내 임계화씨가 그의 비법을 전수받아 음식을 만들어낸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운 좋게도 신선한 이시가리와 광어가 잡힌 날이었다. 사시미칼로 직접 회를 떠 방문객들에게 대접했다. “제가 음식에 까다로운 만큼 그릇이 좋아져요.” 재료, 음식 만드는 법, 맛 등에 대해 제대로 아는 덕에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이 나온다.
#시간
도자기 작업은 겨울에 산에서 나무를 준비해 두고 봄부터 본격적으로 흙만들기, 물레차기 등을 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겨울로 갈수록 사람이 옷을 두껍게 입는 것처럼 작업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집, 황토방은 또 어떤가. 저녁에 땐 불은 새벽녘쯤부터 식어간다. “방에도 매일 생로병사가 있는 것”으로 ‘동일함’이 아닌 ‘변화’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부딪히고 부딪혀서 속에서 그리울 때 어쩔 수 없이 그릇을 만들죠. 똑같은 것은 다시 만들지 않습니다. 가마를 굽다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 급한 마음에 채 식지 않은 뜨거운 그릇을 만지기도 해요.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스며들기도 하죠. 신기한 건 그 장면을 본 것도 아닌데 그런 작품은 사람들이 귀신 같이 알고 좋아한다는 거예요.” 신경균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런 삶의 피와 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많은 것 같다. ‘용의 미’를 껴안고픈 사람들이 있기에 그의 그릇과 음식들이 우리 가슴에 느리고도 맑은 풍경으로 남아 있다.
〈부산|글 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요리만화 ‘맛의 달인’에는 녹색 콩을 담기 위해 붉은색 접시를 굽는 도예가 이야기가 나온다. 바삐 사는 현대인에겐 그릇타령이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숨 한번 크게 쉬고 자신의 삶을 채울 그릇을 찾아보자. 우리의 그릇은 어디있는가.
#그릇
신경균씨는 ‘장안요’(長安窯)라는 자신의 전시장을 운영한다. 그러나 만든 그릇의 대부분은 이곳이 아닌 살림집 부엌 입구에 놓아둔다. 전시하는 게 아니라 ‘놓아두는’ 것이다.
“음식 담으려고 만든 그릇을 전시장에 두니 어울리지 않더군요. 주방 근처에 두면 그릇의 원래 느낌이 살아나고, 사는 사람이 고르기도 쉽죠. 몇번 오신 분은 새 그릇을 사지 않습니다. 부엌에서 저희가 쓰는 것중에서 골라 가요. 쓸수록 빛깔이 좋아지는 그릇이 진짜 좋은 거죠.” 그가 만든 그릇은 철저하게 ‘용의 미’를 시험받는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흰색 그릇도 음식을 밀어내는 느낌을 줄 수 있어 마땅치 않다고 한다. 주황색과 노란색의 멍게김치는 흰 그릇보다 검은 그릇에 담아야 고급스럽다는 것. 전통 역시 변하는 시대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여러 빛깔과 무늬를 내기 위해 새로운 제작법을 시도한다. 그의 그릇은 만졌을 때 차지 않고 손에서 미끌거리지도 않는다. 바로 ‘용의 미’다.
그가 한국 음식에 맞는 그릇을 빚기 위해 흙과 나무 등은 국내산만 쓴다. 도끼로 나무를 패고, 발로 물레를 돌리고, 손으로 그릇을 빚고, 장작으로 가마에 불을 땐다. 중요한 또 하나. 그릇은 음식을 잘 알아야 제대로 만들어진다 하여 그는 음식도 아주 잘한다.
#음식
서리맞은 풋고추로 만든 장아찌, 보성 대나무밭에서 2년 묵힌 갓김치, 무이사(전남 순창에 있는 절)식 죽순잡채, 속을 판 참나무 속에서 익힌 방목 청둥오리 요리….
획일화된 맛이 싫어 직접 요리하며 만든 신경균의 레시피는 가짓수와 양이 늘었다. 요즘은 메주 100되, 김장 500포기를 담고 있다. 석빙고 하나, 업소용 대형 냉장고 두 개에 장독은 20개. 멍게김치, 해물김치 등 김치는 15가지나 된다. 갈치순태젓, 멸치젓, 조개젓 등 젓갈도 10여 가지. 장안요를 찾는 사람은 매번 다른 음식을 맛본다. 아내 임계화씨가 그의 비법을 전수받아 음식을 만들어낸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운 좋게도 신선한 이시가리와 광어가 잡힌 날이었다. 사시미칼로 직접 회를 떠 방문객들에게 대접했다. “제가 음식에 까다로운 만큼 그릇이 좋아져요.” 재료, 음식 만드는 법, 맛 등에 대해 제대로 아는 덕에 한국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이 나온다.
#시간
도자기 작업은 겨울에 산에서 나무를 준비해 두고 봄부터 본격적으로 흙만들기, 물레차기 등을 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겨울로 갈수록 사람이 옷을 두껍게 입는 것처럼 작업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집, 황토방은 또 어떤가. 저녁에 땐 불은 새벽녘쯤부터 식어간다. “방에도 매일 생로병사가 있는 것”으로 ‘동일함’이 아닌 ‘변화’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부딪히고 부딪혀서 속에서 그리울 때 어쩔 수 없이 그릇을 만들죠. 똑같은 것은 다시 만들지 않습니다. 가마를 굽다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 급한 마음에 채 식지 않은 뜨거운 그릇을 만지기도 해요.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스며들기도 하죠. 신기한 건 그 장면을 본 것도 아닌데 그런 작품은 사람들이 귀신 같이 알고 좋아한다는 거예요.” 신경균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런 삶의 피와 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많은 것 같다. ‘용의 미’를 껴안고픈 사람들이 있기에 그의 그릇과 음식들이 우리 가슴에 느리고도 맑은 풍경으로 남아 있다.
〈부산|글 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hotos@kyunghyang.com〉
이 기사는 2005년 3월 13일 경향신문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경향신문 기사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