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조선일보] 서울에서 다시 피어오르는 신경균의 달항아리전 '서울에 뜬 달'

2017-12-22

세계가 놀란 한국 도자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오는 1월 26일부터 2월 4일까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신경균 개인전' 열려

장안요 가마 앞에있는 신경균 작가

"조금이라도 흠이 있는 도자라면 가차 없이 깨버립니다. 뒤도 돌아보지 말아야죠. 모든 것은 과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헤어짐은 미련이 없어야죠. 도자는 사람의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아직 따듯한 온기가 전해지는 가마 앞에서 따끈따끈한 도자를 살펴본 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도자를 던지며 작가는 말했다. 아쉬움도 실패에 대한 울분도 없었다. 작가는 예리한 눈으로 도자를 감별하고 태연하게 안 된 것을 깨버렸다. 신경균의 도자는 시대성을 품은 전통 도자다. 과정에서부터 도자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는 그의 도자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한국 전통 도자의 맥을 이어가며 이 시대의 미학적 사유를 담은 신경균의 도자가 4년여 만에 오는 1월 26일부터 2월 4일까지 서울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도자는 지난 2014년 전 세계가 각국의 문화 자존심을 걸고 도전한다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한국을 대표해 선보인 바 있다. 세계 도자사에서 전통성을 중시하는 동아시아 삼국(한국·중국·일본) 중 한국이 가장 먼저 유네스코 본부에서 도자 전시를 연 것이다. 유네스코 본부 전시에서 선보인 달항아리전시는 '신경균'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을 뿐 아니라 한국의 달항아리, 더 나아가 한국 도자의 푸근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달항아리는 17세기 말~18세기에 경기도 광주 금사리가마와 분원가마에서 제작된 백자대호를 일컫는다. 달항아리는 다른 백자에 비해 크기가 커서 한 번에 성형이 불가하다.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여 항아리를 만든다. 그러다 보니 아래위의 이음새 흔적이 남고, 고온에서 구우면서 크기가 축소되어 형태의 변형이 생겨 자연스러운 비대칭이 만들어지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달항아리는 유독 근현대 문화계 인사의 찬사를 독차지해왔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로 알려진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는 달항아리를 두고 "무심한 아름다움", "잘생긴 맏며느리를 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내 예술은 백자 달항아리에서 나왔다"고 말한 수화 김환기는 그림의 소재로 달항아리를 자주 다뤘을 뿐 아니라 이름난 수집가였다. 현대까지 달항아리는 많은 문화 인사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가스가마가 등장하면서 달항아리가 독특한 자연스러운 미감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에 비해 신경균은 장작가마에서 구운 우리 멋이 살아있는 도자를 굽는 소수의 장인이다.

발물레를 차고 있는 신경균 작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신경균의 도자에 대해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감상했다고 말할 수 없다. 도자기의 최종적인 미학은 바로 촉각이기 때문이다."라며 "그것은 단순히 손과 흙이 접촉할 때 생기는 그 이상의 부드러움도 견고함도 아니다. 달항아리를 반쪽 낸 것 같은 백자 사발을 잡는 손은 이미 흙의 감촉이 아니라 감전이고 진동하는 교감이다."라고 평했다. 신경균 작가의 도자는 이 감촉의 미학이 중요하다.

도자는 쓰임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 그러나 신경균의 모든 도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전국팔도를 돌며 찾아낸 연구의 흔적, 손과 발로 뛰며 축적한 경험의 노하우가 집결되어 있다. 그는 이도다완(井戶茶碗)을 재현한 도예가 장여(長如) 신정희(1930~2007) 선생의 아들로 열다섯부터 아들이자 제자로서 도자에 발을 들였다. 조선 후기 맥이 끊긴 사발의 전통을 스스로 찾아낸 부친의 도자 방식을 그대로 배웠다. 한때 출가를 결심했던 신경균은 이내 도자의 길을 곧 출가와 수행의 길로 받아들였다. 단순한 직업으로서 도자에 임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의 모든 행동과 이상을 도자에 맞춰서 살아간다. 아버지가 사라진 전통을 살려냈다면, 신경균은 그 전통을 이어가되 안주하지 않고 발전시켜 나아간다.

어린 시절 신경균을 보고 몇 년 전 다시 만난 일본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쿠와바라 시세이는 "여름 기장의 장안요를 찾은 나는 전시장의 작품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72년 가을 내가 그를 처음 만나고 37년을 지난 그때의 소년이 훌륭한 도예 작가로 대성해 있는 모습에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선대 신정희가 지니고 있는 유전자가 이 아들에게 맥맥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쩌면 선대의 역량을 이미 능가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찬사는 자신만의 방식과 기법을 찾아 시대가 요구하는 전통성을 찾고자 노력한 모습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과거의 것을 보고, 쓰고, 접하며 직접 경험했다. 우선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전국 가마터 324곳 중 300여 곳을 답사했다. 간혹 비가 많이 오면, 조선 시대 도편이 길바닥에 나오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깨진 도자일 뿐이지만, 그에게는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는 도자의 표본이자 교과서였다. 그 도편을 보고 사용한 흙을 살펴보고, 구워진 정도로 온도를 확인했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그의 답사는 이어졌다. 중국의 주요 가마터를 돌면서 도자와 가마를 살펴보고 우리 것을 연구하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거금을 지출해서라도 도자를 샀다. 도자 연구를 위해서는 우리 옛 문화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도자는 생활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음식사, 의복사, 건축사, 미술사 등 생활 민속 문화사를 알지 못한다면 반쪽짜리 도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신경균은 종종 일본을 방문해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넘어간 우리 도자, 고가구 및 각종 공예품을 살펴보았다. 일본 경매에 조선 공예품이 나오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아끼지 않고 수집했다. 신경균이 자리를 잡은 부산 기장의 장안요는 그의 손으로 만든 도자와 그의 눈으로 고른 고가구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청우> 42x44cm 백자 달항아리 2017


그의 직접 경험은 연구에서 끝나지 않는다. 도자를 만드는 과정에 드러난다. 우선 도자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직접 모은다. 흙, 유약, 철가루, 장작 등 도자 제작의 시종에 그의 숨결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릇, 다기, 화병, 달항아리 등 만드는 형태도 다양하다. 청자, 분청자, 약토, 백자 등 한가지 흙에만 집중해도 어려운 과정이지만 신경균은 어느 하나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한다. 특히 달항아리는 도자의 길에 접어들면서부터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달항아리는 기형이 커서 따로 만들어진 도자를 붙이다 보니 구워지는 과정에서 실패율이 높다. 신경균은 달항아리 제작을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달항아리에 필요한 좋은 흙을 찾을 때까지 '그때'를 기다렸다.

몇 년 전, 한 미술계 관계자로부터 "힘이 들고 실패율이 높은 달항아리보다 당신이 잘하는 사발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작가는 일관된 철학을 가진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도자 하는 사람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익숙해짐에 안주한다. 내가 이런 불을 많이 때봤으니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익숙해짐에 안주하고 편안하게 그 방식대로만 하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신경균의 모든 과정은 모두 자연에서 시작하여 사람의 손길과 자연의 입김으로 마무리되는 고된 단계를 겪는다. 직접 지역의 흙을 섞고, 기계가 아닌 발 물레를 찬다. 철화백자의 경우 호방한 기운과 리드미컬한 붓질에 사용하는 철가루는 일반 업체에서 공급받는 산화철이 아니다. 한여름 장마철에 거대한 자석을 들고 자연에서 모은 철가루를 정제해서 사용한다. 참나무 재를 사용해 숙성시킨 유약, 손으로 유약을 휘휘 저으며 손등 위 솜털에 걸리는 액체를 보고 측정한 투명도 역시 그의 경험으로 이룬 측정법이다. 한겨울 패서 약 5~7년간 건조한 소나무 장작은 껍질을 모두 다듬어 가마에 불을 땔 때 사용한다.

가마와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은 모두 신경균이 직접 디자인했다. 가마의 시작인 놀이 칸에 불을 때서 맨 마지막 칸 가마에 불을 지피기까지 짧게는 22시간 길게는 72시간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장작 가마를 사용하더라도 불 온도를 1350도까지 높이는 도공은 극소수다. 온도 유지를 위해 작가는 가마 앞에 서서 장작을 넣고 기다리기를 반복한다. 1~2도 차이로 도자가 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 흘러내리기 때문에 그 적정한 찰나에 불을 멈춰야 한다. 가마에서 도자가 나오기까지 2주 정도 기다려야 한다. 가마 불의 온도가 서서히 식어가며 도자는 이 열기를 모두 흡수한다. 학수고대하여 가마를 열지만, 달항아리 10개 중 하나의 확률로 작품이 나온다. 이 경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깨버린다. 그는 모든 것은 과정이지 실패가 아니라고 말한다. "만남과 과정은 정성을 들이지만 헤어짐은 미련이 없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러한 그의 고집스러운 전통에 대한 집착이자 작가, 도예가 혹은 도공이라 불리는 이의 삶에 대한 집념은 자칫 옛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태도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과거의 박제를 철저히 거부한다. 그가 고수하는 전통은 과거에 함몰되어 답습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시대미감을 반영하고, 작가의 혼을 불어넣는 전통을 말한다. "100년 뒤 미래에 2017년의 전통은 무엇이었냐고 물을 때, 나의 작업이 전통이었으면 한다."는 그의 말은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는 순리를 따르는 전통에 대한 철학이 드러난다.

흔히 백자 달항아리라 하면 순백자를 떠올리지만, 신경균의 도자는 오묘한 백색이 특징이다. 사람의 손을 떠나 자연이 함께 만들어가는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는 신경균의 도자 제작 과정은 색에서 나타난다. 순백색을 위해 불순물을 모두 제거하는 것과 달리 그는 오묘한 자연의 미를 살리는 방안을 연구한다. 사용하면서 사람의 손이 닿으며 자연스럽게 백색이 되어 가는 오묘한 청색과 흙색이 신경균의 달항아리에 드러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그의 도자를 두고 "신경균의 빛깔이라고 하면 역시 초록빛과 짙은 갈색이 아닐까 생각된다. 같은 초록이라도 짙고 옅음, 밝고 어두움에 따라 여러 변화가 있어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나는 자연 속의 풀빛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갈색도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은 자연 속의 흙색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신경균의 초록빛 그릇과 갈색 그릇은 마치 풀과 흙이 어울리듯 좋은 대비와 조화를 이룬다."고 평했다.

2018년 1월 서울에서 떠오를 달항아리는 신경균의 40년간의 도업의 집결이자 반듯하지 않고 수더분한 달항아리의 진수를 선보일 자리가 될 것이다. 그동안 그가 쌓아 올린 영롱하면서 오묘한 풀빛 같은 청색과 흙내음이 나는 황빛이 감도는 백자의 결정체와 기교를 부리지 않은 우직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선, 그리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촉감이 살아있는 기운의 달항아리. 신경균이 지키고 걸어갈 전통의 연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아트조선=임승현 기자

이 기사는 2017년 12월 22일 조선일보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조선일보 기사 원문 보기 

Jang-An-Yo / Shin Gyung Kyun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하장안1길 24 
24 Hajangan-1 gil, Jangan-eup, Gijanggun, 
Busan, Korea  

E info@janganyo.com  |  T +82 51 727 6647 

Copyright © Janganyo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