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기장 ‘장안요’의 신경균 도자기 명인과 그의 대표 작품인 달항아리.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도자기를 보는 안목을 키우기는 어렵다. 이는 쉽게 키워지지 않는 안목임이 분명하다. 어떤 도자기가 작품인가, 어떤 점이 훌륭한가를 알아보는 것이 안목이다. 그러려면 원료가 되는 흙에 대한 기본 섭렵이 있어야 한다.
도자기마다 흙의 성질이 다르다. 달항아리용 흙이 다르고 분청이 다르다. 또 찻사발 용도의 흙이 다르다. 그 흙을 구하기 위해 각지를 답사해봐야 한다. 불도 알아야 한다. 장작이 소나무인가, 참나무인가, 단풍나무인가, 아니면 자작나무인가에 따라 화력이 다르다. 완전연소가 포인트이다. 그리고 이걸 몇 도까지 올리고, 올린 다음에 그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고도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유약도 각기 성질이 다르다.
도자기 안목 키우기의 어려움
그것뿐인가. 과거에 명품이 나왔던 가마터나 도요지를 답사해봐야 한다. 가마터가 어디 한두 군데인가. 한·중·일에 걸쳐 수백 군데가 널려 있다. 수백 군데를 다니려면 집을 팔아도 경비조달이 쉽지 않다. 당나라 때 도자기와 송대, 원대, 명대, 청대 도자기가 각기 디자인이 다르고 색감이 다르다. 어느 장인이 구웠느냐에 따라 분위기와 질감도 다르다.
임진왜란 이후로 일본의 도자기도 조선 도공들을 데려가면서 질적인 변화를 거쳤다. 일본 명인들의 도자기도 공부해봐야 한다. 왜 ‘이도다완(井戶茶碗)’이 일본의 국보가 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도 공부해 봐야 하고, 일본 국보가 된 조선 도자기의 산지가 어디 어디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조선의 어느 지역 도공들이 일본에 잡혀가서 일본 어느 지역에 자리를 잡았는가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문(文)·사(史)·철(哲)을 모두 섭렵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만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도자기를 공부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과연 이만큼 투자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부산시 기장군 장안면에 자리 잡고 있는 ‘장안요(長安窯)’를 방문하였다. 장안요는 당대의 도자기 명인으로 꼽히는 도공 신경균(申京均·60)이 사는 곳이다. 신경균의 아버지 신정희 선생도 유명하다. 1970년대 초반 일본의 도자기 애호가들이 신정희 작품에 매료되어서 한국 도자기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안요를 찾아갔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음식이었다. 신경균과 그의 부인이 해주는 요리 맛이 문화계 인사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명성이 자자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맛이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만든 그릇에 부인이 만든 음식을 먹고 나면 ‘세상사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어 있다. 부인의 음식솜씨도 유명한 요리 명인이었던 친정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내공이다.
“도자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묻기는 쉬워도 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서두부터 던지면 무례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의심받을 수 있다. 자칫하면 질문에 답변하는 사람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아주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몇 마디로 압축해 보라는 요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압적인 질문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경균은 기분 상하지 않고 간단하게 답변해 버렸다. “촉감이다!” “촉감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릇은 손으로 만지게 되어 있는 도구이다. 손으로 만지면 촉감이 전달된다. 그 촉감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거친 촉감, 부드러운 촉감, 차가운 촉감, 반질반질한 촉감 등등이다.” “그렇다면 모든 촉감 중 최고는 어떤 촉감이란 말인가?” “어린아이 피부 같은 촉감이다. 아주 부드럽고 만지는 손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는 촉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촉감을 감지하려면 도자기를 손으로 만져보아야 한다. 한두 번 만져서는 모르고 일상 생활 속에서 도자기를 사용해봐야 안다. 촉감이란 영역은 사진이나 책으로는 감지할 수 없다. 오로지 손으로 직접 만져보아야 한다. 도자기는 사진으로 보거나 책으로 읽어서 공부할 수 없는 영역이다. 만져보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도자기 공부가 어려운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플라스틱이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그릇을 사용한다. 도공이 만든 도자기를 쓰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중이 도자기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알아보기가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한다.”

신경균 명인의 자택에 있는 떡판. 어린아이 피부 같은 부드러운 촉감을 자랑한다. photo 조용헌
“도자기는 촉감이다”
논어에 보면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라는 말이 있다. 즉 태어나서부터 아는 사람, 배우고 나서야 아는 사람, 겪어봐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도자기는 촉이지지(觸而知之) 영역에서 놀아야 안다. 손으로 접촉해봐야 안다는 뜻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감각기관이 제일 먼저 안다. 우리의 두뇌는 가장 늦게 알아차린다. 감각이 먼저라는 말이다. 감각기관에서 수집하고 접촉한 정보가 최종적으로 두뇌로 들어간다. 머리는 최종 터미널에 해당한다. 감각기관에서 최전방 정보는 먼저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은 감각기관이 퇴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머리로만 파악하려는 성향이 강해져 버린 것이다.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이 살아 있으려면 좀 단순해져야 한다. 복잡하면 감각기관이 무뎌져서 ‘촉이지지’의 경지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휴대폰 화면에 시각을 집중시켜 정보를 얻는 현대인의 삶에서 촉감의 영역은 무시되기 쉽다. 촉감을 기를 여건이 안되는 셈이다. 신경균의 장안요에서 촉감이 뭔지를 아는, 촉감이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감지하는 훈련을 하기 위하여 집안에 설치한 도구들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2개인데, 하나는 황토방 안에 있는 떡판이고 다른 하나는 마룻바닥이다. 2가지 모두 나무가 재료라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방 안에 놓인 떡판이다. 가로 150㎝, 세로 60㎝ 크기다. 높이가 20㎝ 정도 될까. 나무 재료는 400년 된 단풍나무이다. 떡판은 떡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어느 이름 없는 목공 장인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시골에서 사용하던 것인데 촉감이 아주 부드럽다. 어린아이 피부라는 것은 이를 가리킨다. 만지면 또 만지고 싶다. 손바닥에서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손바닥으로 떡판을 만지면 애무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니 자꾸만 만지게 된다. 이렇게 부드러운 목재 떡판을 자꾸 만지다 보면 사람도 부드러워지고 섬세해질 것 같다. 촉감이 사람의 정서를 안정시킨다고나 할까. 이 떡판을 만지면서 이런 깨달음들이 떠올랐다. ‘성격이 거친 사람은 이 떡판을 만져라! 만지다 보면 부드러워질 것이다. 머리에서 너무 계산을 굴리는 사람은 이 떡판을 만지거라! 만지다 보면 머리의 열이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기꾼으로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이 떡판을 만지거라!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 의미 없다고 비관하는 사람은 이 떡판을 만지거라!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올라올 것이다.’
촉감을 키우는 신경균의 도구들
촉이지지를 느끼는 또 하나의 장치는 마룻바닥이다. 이 마룻바닥은 신경균의 장안요에만 있는 명품이다. 마루가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이 집에 와서 하게 되었다. 국산 소나무로 만들어 역시 반들반들한 촉감이 아주 좋다. 소나무를 짜 맞춤으로 해서 바닥에 깔았는데 판자 사이로 빈틈이 하나도 없이 꽉 짜여 있다. 남미 잉카문명에서 만든 돌담의 틈새보다 더 조밀하게 짜여 있다. 보통 회사에서 만들어 파는 원목마루와는 차원이 다름은 물론이다. 넓이는 약 130㎡(40평) 정도. 마룻바닥을 까는 작업에만 두 달이 걸렸다고 한다. 마룻바닥 하나 까는 데 두 달이 걸렸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 분야 전문 목수를 불러 작업을 했는데, 지불한 임금만 수천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소나무 판재 하나하나를 일일이 사개맞춤으로 맞추는 작업이었으므로 정교한 수공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소나무의 재질이다. 20년 전에 시공했는데도 현재까지 뒤틀리거나 틈새가 벌어지지 않고 완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비결은? 소나무를 도자기 굽는 가마에서 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 소나무를 켜서 10년간 말려 두었다가 가마 속에다가 쇠로 만든 석쇠를 걸고 하나씩 얹어서 구웠다고 한다. 낮은 온도에서 일주일간 불을 때서 구웠다고 한다. 나무를 굽다니? 그러면 전부 타 버릴 것 아닌가? 바로 이 지점에 비결이 있다. 불을 다루는 전문가 신경균의 노하우가 작용하였던 것이다. 가마 속의 소나무 판재가 겉만 약간 타고 속은 타지 않을 정도의 불 온도를 유지하였다는 점이 그만의 비결이다. 즉 낮은 온도에서 일주일간 구웠다는 얘긴데 그 낮은 온도가 비결이다. 40년간 불을 다뤄온 불의 장인 신경균만이 시도할 수 있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가마에서 판재를 구운 이유는? 나무 속의 수분을 증발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수분이 증발되면 나중에 판재가 뒤틀릴 원인이 제거된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소나무의 수분을 증발시킬 것인가? 불에 한번 구워 보자. 도자기 굽듯이 말이다. 너무 불을 세게 때면 나무가 전부 타버려서 숯이 될 터이니 껍데기만 약간 태우고 판재의 본체는 수분과 송진만 빠진 상태로 구워 보자!’
그의 말에 의하면 일주일간 불을 때면서 가마의 굴뚝에 불이 붙기도 하였다. 소나무 송진이 빠지면서 불이 붙은 것이다. 마룻바닥의 중심주 판재 두께는 약 5㎝, 주변부는 3~4㎝의 두께이다. 마루 가운데가 두꺼워야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들어갔다. 방안의 떡판이 손바닥의 촉감 계발용이라면 마룻바닥은 발바닥의 촉감을 각성시켜주는 기능이 있다고 사료된다.
장안요에서 제3의 촉감은 현관문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조성된 석탑이다. 거친 질감의 대명사는 석탑이 될 수밖에 없다. 이 탑은 왜정 때 일본으로 반출되어 규슈 지역의 이토 히로부미 별장에 있던 것을 거금을 지급하고 국내에 다시 들여온 것이다. 이 국내 송환 작업에는 신경균의 지기(知己)이자 도자기 전문가인 정충영(61)의 노고가 있었다. 실전 도자기의 장인이 신경균이라면 정충영은 도자기의 이론과 감식안에 있어서 필자가 국내 최고봉으로 꼽는 강호의 고수이다. 직업은 일본과의 무역업이었는데, 일본을 자주 출입하면서 일본 도자기를 섭렵하게 되었고, 일본 도자기의 족보에 대해 훤하게 꿸 수 있게 됐다. 고향이 경남 합천이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마가 오면 고향 동네 언덕의 흙더미 속에서 쓸려나오는 가야 고분의 도자기와 파편들을 보고 컸다고 한다. 무역업 해서 돈만 생기면 도자기 수집과 공부에 투자했다는데, 필자는 도자기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으면 정충영 선생부터 찾는다.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부산 기장 ‘장안요’의 신경균 도자기 명인과 그의 대표 작품인 달항아리.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도자기를 보는 안목을 키우기는 어렵다. 이는 쉽게 키워지지 않는 안목임이 분명하다. 어떤 도자기가 작품인가, 어떤 점이 훌륭한가를 알아보는 것이 안목이다. 그러려면 원료가 되는 흙에 대한 기본 섭렵이 있어야 한다.
도자기마다 흙의 성질이 다르다. 달항아리용 흙이 다르고 분청이 다르다. 또 찻사발 용도의 흙이 다르다. 그 흙을 구하기 위해 각지를 답사해봐야 한다. 불도 알아야 한다. 장작이 소나무인가, 참나무인가, 단풍나무인가, 아니면 자작나무인가에 따라 화력이 다르다. 완전연소가 포인트이다. 그리고 이걸 몇 도까지 올리고, 올린 다음에 그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고도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유약도 각기 성질이 다르다.
도자기 안목 키우기의 어려움
그것뿐인가. 과거에 명품이 나왔던 가마터나 도요지를 답사해봐야 한다. 가마터가 어디 한두 군데인가. 한·중·일에 걸쳐 수백 군데가 널려 있다. 수백 군데를 다니려면 집을 팔아도 경비조달이 쉽지 않다. 당나라 때 도자기와 송대, 원대, 명대, 청대 도자기가 각기 디자인이 다르고 색감이 다르다. 어느 장인이 구웠느냐에 따라 분위기와 질감도 다르다.
임진왜란 이후로 일본의 도자기도 조선 도공들을 데려가면서 질적인 변화를 거쳤다. 일본 명인들의 도자기도 공부해봐야 한다. 왜 ‘이도다완(井戶茶碗)’이 일본의 국보가 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도 공부해 봐야 하고, 일본 국보가 된 조선 도자기의 산지가 어디 어디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조선의 어느 지역 도공들이 일본에 잡혀가서 일본 어느 지역에 자리를 잡았는가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문(文)·사(史)·철(哲)을 모두 섭렵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만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도자기를 공부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과연 이만큼 투자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부산시 기장군 장안면에 자리 잡고 있는 ‘장안요(長安窯)’를 방문하였다. 장안요는 당대의 도자기 명인으로 꼽히는 도공 신경균(申京均·60)이 사는 곳이다. 신경균의 아버지 신정희 선생도 유명하다. 1970년대 초반 일본의 도자기 애호가들이 신정희 작품에 매료되어서 한국 도자기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안요를 찾아갔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음식이었다. 신경균과 그의 부인이 해주는 요리 맛이 문화계 인사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명성이 자자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맛이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만든 그릇에 부인이 만든 음식을 먹고 나면 ‘세상사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어 있다. 부인의 음식솜씨도 유명한 요리 명인이었던 친정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내공이다.
“도자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묻기는 쉬워도 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서두부터 던지면 무례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의심받을 수 있다. 자칫하면 질문에 답변하는 사람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아주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몇 마디로 압축해 보라는 요구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압적인 질문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경균은 기분 상하지 않고 간단하게 답변해 버렸다. “촉감이다!” “촉감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릇은 손으로 만지게 되어 있는 도구이다. 손으로 만지면 촉감이 전달된다. 그 촉감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거친 촉감, 부드러운 촉감, 차가운 촉감, 반질반질한 촉감 등등이다.” “그렇다면 모든 촉감 중 최고는 어떤 촉감이란 말인가?” “어린아이 피부 같은 촉감이다. 아주 부드럽고 만지는 손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드는 촉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촉감을 감지하려면 도자기를 손으로 만져보아야 한다. 한두 번 만져서는 모르고 일상 생활 속에서 도자기를 사용해봐야 안다. 촉감이란 영역은 사진이나 책으로는 감지할 수 없다. 오로지 손으로 직접 만져보아야 한다. 도자기는 사진으로 보거나 책으로 읽어서 공부할 수 없는 영역이다. 만져보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도자기 공부가 어려운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플라스틱이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그릇을 사용한다. 도공이 만든 도자기를 쓰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대중이 도자기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알아보기가 그래서 어렵다고 생각한다.”
신경균 명인의 자택에 있는 떡판. 어린아이 피부 같은 부드러운 촉감을 자랑한다. photo 조용헌
“도자기는 촉감이다”
논어에 보면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라는 말이 있다. 즉 태어나서부터 아는 사람, 배우고 나서야 아는 사람, 겪어봐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도자기는 촉이지지(觸而知之) 영역에서 놀아야 안다. 손으로 접촉해봐야 안다는 뜻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감각기관이 제일 먼저 안다. 우리의 두뇌는 가장 늦게 알아차린다. 감각이 먼저라는 말이다. 감각기관에서 수집하고 접촉한 정보가 최종적으로 두뇌로 들어간다. 머리는 최종 터미널에 해당한다. 감각기관에서 최전방 정보는 먼저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은 감각기관이 퇴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머리로만 파악하려는 성향이 강해져 버린 것이다.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이 살아 있으려면 좀 단순해져야 한다. 복잡하면 감각기관이 무뎌져서 ‘촉이지지’의 경지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휴대폰 화면에 시각을 집중시켜 정보를 얻는 현대인의 삶에서 촉감의 영역은 무시되기 쉽다. 촉감을 기를 여건이 안되는 셈이다. 신경균의 장안요에서 촉감이 뭔지를 아는, 촉감이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감지하는 훈련을 하기 위하여 집안에 설치한 도구들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2개인데, 하나는 황토방 안에 있는 떡판이고 다른 하나는 마룻바닥이다. 2가지 모두 나무가 재료라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방 안에 놓인 떡판이다. 가로 150㎝, 세로 60㎝ 크기다. 높이가 20㎝ 정도 될까. 나무 재료는 400년 된 단풍나무이다. 떡판은 떡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어느 이름 없는 목공 장인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시골에서 사용하던 것인데 촉감이 아주 부드럽다. 어린아이 피부라는 것은 이를 가리킨다. 만지면 또 만지고 싶다. 손바닥에서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손바닥으로 떡판을 만지면 애무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니 자꾸만 만지게 된다. 이렇게 부드러운 목재 떡판을 자꾸 만지다 보면 사람도 부드러워지고 섬세해질 것 같다. 촉감이 사람의 정서를 안정시킨다고나 할까. 이 떡판을 만지면서 이런 깨달음들이 떠올랐다. ‘성격이 거친 사람은 이 떡판을 만져라! 만지다 보면 부드러워질 것이다. 머리에서 너무 계산을 굴리는 사람은 이 떡판을 만지거라! 만지다 보면 머리의 열이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기꾼으로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이 떡판을 만지거라!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 의미 없다고 비관하는 사람은 이 떡판을 만지거라!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올라올 것이다.’
촉감을 키우는 신경균의 도구들
촉이지지를 느끼는 또 하나의 장치는 마룻바닥이다. 이 마룻바닥은 신경균의 장안요에만 있는 명품이다. 마루가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이 집에 와서 하게 되었다. 국산 소나무로 만들어 역시 반들반들한 촉감이 아주 좋다. 소나무를 짜 맞춤으로 해서 바닥에 깔았는데 판자 사이로 빈틈이 하나도 없이 꽉 짜여 있다. 남미 잉카문명에서 만든 돌담의 틈새보다 더 조밀하게 짜여 있다. 보통 회사에서 만들어 파는 원목마루와는 차원이 다름은 물론이다. 넓이는 약 130㎡(40평) 정도. 마룻바닥을 까는 작업에만 두 달이 걸렸다고 한다. 마룻바닥 하나 까는 데 두 달이 걸렸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 분야 전문 목수를 불러 작업을 했는데, 지불한 임금만 수천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소나무 판재 하나하나를 일일이 사개맞춤으로 맞추는 작업이었으므로 정교한 수공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소나무의 재질이다. 20년 전에 시공했는데도 현재까지 뒤틀리거나 틈새가 벌어지지 않고 완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비결은? 소나무를 도자기 굽는 가마에서 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 소나무를 켜서 10년간 말려 두었다가 가마 속에다가 쇠로 만든 석쇠를 걸고 하나씩 얹어서 구웠다고 한다. 낮은 온도에서 일주일간 불을 때서 구웠다고 한다. 나무를 굽다니? 그러면 전부 타 버릴 것 아닌가? 바로 이 지점에 비결이 있다. 불을 다루는 전문가 신경균의 노하우가 작용하였던 것이다. 가마 속의 소나무 판재가 겉만 약간 타고 속은 타지 않을 정도의 불 온도를 유지하였다는 점이 그만의 비결이다. 즉 낮은 온도에서 일주일간 구웠다는 얘긴데 그 낮은 온도가 비결이다. 40년간 불을 다뤄온 불의 장인 신경균만이 시도할 수 있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가마에서 판재를 구운 이유는? 나무 속의 수분을 증발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수분이 증발되면 나중에 판재가 뒤틀릴 원인이 제거된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소나무의 수분을 증발시킬 것인가? 불에 한번 구워 보자. 도자기 굽듯이 말이다. 너무 불을 세게 때면 나무가 전부 타버려서 숯이 될 터이니 껍데기만 약간 태우고 판재의 본체는 수분과 송진만 빠진 상태로 구워 보자!’
그의 말에 의하면 일주일간 불을 때면서 가마의 굴뚝에 불이 붙기도 하였다. 소나무 송진이 빠지면서 불이 붙은 것이다. 마룻바닥의 중심주 판재 두께는 약 5㎝, 주변부는 3~4㎝의 두께이다. 마루 가운데가 두꺼워야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들어갔다. 방안의 떡판이 손바닥의 촉감 계발용이라면 마룻바닥은 발바닥의 촉감을 각성시켜주는 기능이 있다고 사료된다.
장안요에서 제3의 촉감은 현관문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조성된 석탑이다. 거친 질감의 대명사는 석탑이 될 수밖에 없다. 이 탑은 왜정 때 일본으로 반출되어 규슈 지역의 이토 히로부미 별장에 있던 것을 거금을 지급하고 국내에 다시 들여온 것이다. 이 국내 송환 작업에는 신경균의 지기(知己)이자 도자기 전문가인 정충영(61)의 노고가 있었다. 실전 도자기의 장인이 신경균이라면 정충영은 도자기의 이론과 감식안에 있어서 필자가 국내 최고봉으로 꼽는 강호의 고수이다. 직업은 일본과의 무역업이었는데, 일본을 자주 출입하면서 일본 도자기를 섭렵하게 되었고, 일본 도자기의 족보에 대해 훤하게 꿸 수 있게 됐다. 고향이 경남 합천이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마가 오면 고향 동네 언덕의 흙더미 속에서 쓸려나오는 가야 고분의 도자기와 파편들을 보고 컸다고 한다. 무역업 해서 돈만 생기면 도자기 수집과 공부에 투자했다는데, 필자는 도자기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으면 정충영 선생부터 찾는다.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이 기사는 2023년 1월 11일 주간조선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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